불비불명 (不飛不鳴)

감옥에서 사천권의 책을 읽었다고 알려진 자에 대해 들으며
스스로 감옥에 갇힌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감옥에서 그 자는
가만히 생각하고 책을 읽고
다시 생각을 하고
몸 하나 건사할 정도의 식사만 하고
다시 책을 읽었을테지

생각하는 자에게는 어떤 육체의 노동보다도
그 생각하는 것을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벌이다.

그러나 수인은
수인에게 허락된 범위 안에 그 뜻을 펼치면 되고
청년은 청년에게 허락된 범위 안에 그 꿈꾸는 바를 풀어내면 되는 것이지
자유를 핑계 삼아 수인이 청년의 꿈을 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감옥의 한기와 고독을 동무삼아 사천권의 책을 읽은 이 자를 보라.
결국 그 뜻한 바로 한 시대를 품어낸다.

그 자가 수인으로 있을 때 청년의 것을 탐해 설쳤더라면
그는 평생 청년과 같은 뜨거운 자는 될지언정
그의 이상을 시대로 엮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기회는 온다.

뿜어져나오는 열정의 열기를 잃지 않되 내강외유 하여
한계라는 이름의 다른 면을 찾아낼 것. 그러면 하늘이 문을 연다.

그 순간, 그 찰나가 비로소 수인이 영원한 청년으로 바뀌는 시간인 것이다.

용기

어두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겠지만
그것에 한번 길들여지고 나면
다시는 빛을 보고 싶지 않기도 하다.
겨우 허물을 벗기 시작해 그 행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밝은 빛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
그것은 왠만한 용기로는 감히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일 인 것이다.

이별

모든 시간은 멈춰있고
낮과 밤의 경계는 무너졌다.
공간의 구분은 희미하고
오로지 존재하는 적막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남가일몽 (南柯一夢)

색 안경 끼고 숨쉬는 날들을 세어왔으니
화려하지 않은 날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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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은
한번도 손에 잡아본 적 없는 빛깔,
손가락 세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처럼
한 바탕 꿈을 꾼 것 같이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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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 속 무지개를
마치 가진 자 처럼 행세했으니
세상을 속였구나.
허상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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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안경을 벗어버리고
흙빛 현실을 받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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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칠색빛깔
잘 뻗은 무지개를 기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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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빛을 아는 자,
눈 뜨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
그런 자는
무지개를 만든다.

버티는 자, 꽃이 핀다

추운 겨울
꽃이 핀다.

가을이 봄에게로 넘어가는 시간

나무에 잎이 붙고
잔디는 버틴다.

“때가 아니라도 될 일은 되고 있구나
뛰지 않아도 된다. 멈추지만 말자”

때가 아니라도
될 일은 되고 있구나

뛰지 않아도 된다
멈추지만 말자

그 때가 아니라 해도
기다리는 계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버티는 지금을 사는 자,
꽃이 핀다. 잎이 붙는다.

우리의 지금에
꽃 향기가 난다.

네 명의 청년이 걸어간다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날카롭게 뻗은 아스팔트 위를
네 명의 청년이 걸어간다.

가로등은 고사하고 반디의 불빛도 없다.

까만 밤의 공간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껌뻑 거리는 상대의 눈동자를 횃불 삼아
날카롭게 뻗은 아스팔트 위를 네 명의 청년이 걸어간다.

“반짝 거리는 많은 별을 어젯 밤 보았어”
한 청년이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청년,
입김을 불어 서린 김을 손가락으로 가르며
금새 그 별들을 본 것 처럼 그려낸다.
“이렇게 생긴 것이었니”

그림을 본 또 다른 청년,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니 까만 공간이 밝아진다.

세 청년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내가 이것을 기록한다.

꿈을 꾸고, 그림을 그리고, 웃음을 주고, 기록을 하는 자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날카롭게 뻗은 아스팔트 위에서
네 명의 청년이 내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