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나는 계단에서 그 장면을 냉소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만들어버렸고,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시작했을 때도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나는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쉽게 마음을 바꾸는 여자들의 천박함에 학을 땠고, 그런 여자들의 사랑을 믿는 남자들의 우둔함을 조롱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하는 이에 대한 예의로 그냥 같이 웃어주었고, 여자들은 그런 나를 별나고 불쌍한 인간처럼 바라보았다. 비참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상처를 계속 할퀴고 또 할퀴었다. 어느 날 저녁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자 한 친구가 나와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며, 요즘 내가 스스로를 희화화하고 있는것 같다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비웃음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애써 과시하려는 변절자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무신론자가 신자를, 공산주의자가 시민 가정을, 출세한 사람이 과거 자신의 궁상스런 형편을 비웃는 것과 같은 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베른하르트 슈링크 /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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